이혼부부(가정)의 자녀문제, 부모의 이별에 흔들리는 아이의 심리

평생의 사랑을 맹세하는 아름다운 약속인 ‘결혼’. 혼인 서약의 순간에는 그토록 견고해 보이던 것이, 갈등이 쌓이고 반복될수록 점차 흩어져 버리고는 합니다. 

헤어짐을 예상하고 결혼을 결심하는 부부가 과연 있을까요? 

결혼 생활 중 예상치 못했던 장애물에 결국 무너지는 것이겠지요. 

가족이 되었다가 다시 남이 되는 과정은 부부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게 됩니다.
 

게다가 만약 자녀가 있는 경우라면 자녀들의 양육을 책임지고, 자녀의 상처받은 마음까지 돌봐야 하는 이중고도 겪게 됩니다. 

어쩌면 당사자인 부부보다 더 아파하는 존재가 바로 자녀일 수 있죠. 

대부분의 부모는 이혼으로 인한 자녀들의 불안과 슬픔을 이해하며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러나 간혹 자신의 아픔을 감당하기 버거운 부모의 경우, 미처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정서적으로 힘든 부모는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더불어 부모와 자녀의 역할이 역전되어 아이가 부모를 돌보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죠.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아이는 부모 상실에 대한 위기감 때문에 가정에서 부재한 부모 역할을 하며 일시적으로 성숙해 보일 수 있지만, 성장 후에 우울증, 품행장애, 성격 장애 등을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아이들의 심리적 변화

Bryner는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아이들이 이혼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변화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심경과 유사한 부정→ 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로 진행된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아이들에 따라 이 단계가 반드시 순차적으로 진행되거나 모든 단계를 다 거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1.부정 단계

부모가 이혼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 하며, 헤어졌다면 다시 합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결합의 공상은 수년간 지속되기도 합니다.
 

2.분노 단계

양쪽 부모와 다 같이 살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부모에게 분노를 느끼며, 이와 관련해 종종 행동화 문제를 보이기도 합니다. 

학령기 아동의 경우 화를 내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3.타협 단계

자녀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변화시켜 이혼에 의한 상처를 치료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런데 학령 전기 유아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부모 중 한 명이 떠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므로, 부모가 이혼한 것은 절대 아이들의 잘못 때문이 아님을 잘 설명해주고 안심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4.우울 단계

생활 전반에 걸쳐 우울하고 슬픈 감정이 나타납니다. 학령기 아동의 경우, 학교생활에서 문제행동을 나타내거나 어려움을 보일 수 있습니다.
 

5.수용 단계

부모의 이혼이 최선책이었으며, 차라리 같이 사는 것보다 떨어져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인정하면서 혼란스러웠던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 됩니다. 

대부분 연령대가 높은 아동이나 청소년, 성인 자녀에게서 나타납니다.

부모의 이혼은 자녀의 PTSD를 유발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라는 진단명,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학계에서 인정받게 된 계기를 아시나요? 

그 출발은 제 1,2차 세계대전에서 참전한 군인들이 분노 조절 장애, 과한 흥분 상태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자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나치 대학살의 피해자인 유대인, 베트남 파병 군인 등도 비슷한 고통을 호소하면서 1980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공식 병명으로 채택됩니다.

이처럼 군인들이 정신적 외상을 설명하는 PTSD는 부부의 잦은 다툼을 목격하거나 가정 폭력에 노출된 아이에게 비슷한 정도의 스트레스를 준다고 합니다. 

총성이 울리고 생명이 위협받는 전쟁터의 두려움, 공포, 불안 수준이 부모의 갈등으로 인해 아이 마음에도 자리하는 것입니다. 

또 일부 아이들은 부부간 갈등의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자책하기도 합니다.

이혼 후 부모소외는 자녀 학대?

이혼 가정에서 지켜야 할 수칙들 몇 가지 가운데 “(전)배우자의 험담을 아이들에게 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혼 과정에서 나오는 부모의 신세한탄이 자녀들에게는 큰 상처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인데요.

흔히 이혼 과정에서 일부 부모들은 힘든 감정을 어린 자녀들 앞에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와 함께 배우자를 비난하고 험담하며 이에 동조하도록 아이들을 압박하기도 하고, 때로는 누구와 함께 살지 스스로 결정하라는 등의 감당하기 힘든 역할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제니퍼 하먼(Jennifer Harman)은 이러한 행동은 새로운 아동학대 형태라고 지적합니다. 

부모소외는 아동학대와 더불어 자녀들과 전 배우자의 친밀감을 크게 해치는 폭력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크레이그 차일레스(Craig Childress) 박사에 따르면, 주로 한 부모를 따돌리는 행위는 별거나 이혼한 가정에서 잘 나타나며, 자녀와 다른 부모를 이간질 시키는 해당 부모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나 경계성 성격장애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대개 이러한 부모소외는 미묘하고 알아차리기 힘든 상황의 변화로 시작하는데, 대개 한 부모가 아이의 입장을 대변하는 식으로 전달해 아이와의 관계를 소원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면접교섭권을 가진 부모가 아이와 주말을 같이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시험이 곧 있어 아이가 공부하기를 원한다”거나, “주말에는 조부모님들하고 보내는 것이 더 좋겠다”와 같이 자녀의 의견을 대신 전달하거나 상황을 대신 정해서 통보하는 식입니다.

다음은 부모소외가 나타나기 전 상황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행동들입니다.

1. 아이가 자신과의 외출에 오지 말 것을 요청한다.
2. 이전과 달리 아이의 태도에 변화가 있다.
3. 자녀가 교내 학부모 회의나 모임에 착석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4. 자녀들이 논쟁적이고 전투적이 되며, 극단적인 형태로 폭발적인 분노 반응까지 보인다.
5. 어린이의 천진난만한 능동적인 감정교류가 보이지 않는다.
6. 자녀들은 한 부모를 따돌리는 행동이 병적인 부모에 의한 조작을 인정하지 않는다.(거절하는 과정을 그들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차일레스 박사는 아이들은 부모의 양육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부모소외의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상대 부모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부모소외는 명백히 자녀와의 친밀감을 해치고, 자녀에게 부모의 싸움에서 중재를 해야 하는 입장으로 만들기 때문에 자녀의 정신적 성장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이혼했지만 부모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면?

이혼 후 이제 남이 되었지만 상대 배우자에 대한 미움을 잠시 접어두고, 부모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면, 앤 버스쵸(Ann buscho)박사가 제안하는 4가지 조언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이가 부모 양쪽 다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세요.

부족하고 불완전한 부모일지라도 아이들은 부모 모두를 필요로 하고, 사랑합니다.
(단 가정폭력이나 신체 및 정서적 학대가 있었던 경우는 제외입니다.)
 

다른 부모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금물입니다.

“아빠를 닮아서 수학을 정말 잘하는구나!”와 같이 긍정적인 언급을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전 배우자의 사생활을 캐내기 위한 스파이로 자녀를 활용하지 마세요.

아이는 눈 앞에서 다툼을 목격하지 않더라도 작은 단서나 부모의 표정 등으로 갈등을 느끼고 불안해 할 수 있습니다.
 

부모 중 한 명과 떨어져 지내더라도 부모 모두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세요.

아이의 삶에서 중요한 중요한 순간들을 공유하고 축하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큰 상을 탔거나, 중요한 시험 및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냈을 때 상대 배우자가 격려할 수 있도록 귀띔해 주세요.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아이들 중 본인이 느끼는 심적 고통과 힘든 마음을,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경우에는 비교적 자녀의 심리상태를 파악하기 쉽기 때문에, 필요한 정서적 지원이나 지지를 제공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을 지나치게 억누르거나 자신조차 어떤 마음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겉으로는 별다른 동요 없이 묵묵히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아이들의 경우, 오히려 내면의 어려움을 해소하지 못해 한꺼번에 묵혀 둔 감정의 파고가 휘몰아칠 수도 있으므로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부부 관계는 시작도, 끝도 당사자의 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지만, 한번 부모가 되면 삶이 다하는 날까지 그 역할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의 절반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엄마, 아빠의 관계가 변해도 항상 네 곁에 늘 있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부의 사이는 끝났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부모로서 남는 일 만큼은 저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